[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⑤] 단군조선 시절 5행성 결집 현상에 침묵하는 강단사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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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⑤] 단군조선 시절 5행성 결집 현상에 침묵하는 강단사학계

하이커뮤니티매니져 0 16 01.02















불리한 사실엔 수십년 째 무시, 회피로 일관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있었던 5행성 결집 현상을 컴퓨터로 재현한 모습이다. 이 현상을 후대의 누군가가 조작해 적어서 맞아 떨어질 확률은 0.007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이 현상은 당대의 누군가가 실측한 것이며 《단군세기》에 적힌 기록은 그 실측된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사진=박창범 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있었던 5행성 결집 현상을 컴퓨터로 재현한 모습이다. 이 현상을 후대의 누군가가 조작해 적어서 맞아 떨어질 확률은 0.007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이 현상은 당대의 누군가가 실측한 것이며 《단군세기》에 적힌 기록은 그 실측된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사진=박창범 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보수 야당과 일부에서 이 대통령이 '위서'인 『환단고기』를 '신봉'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고 있다. 과연 정말 『환단고기』는 강단사학계 측의 주장대로 위서가 맞는지 검증을 위해 이번 기사를 기획했다.<편집자 주>




본지가 지난 4차례에 걸쳐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주장한 이른바 『환단고기』위서론이 얼마나 충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둔 주장인지 검증해 본 결과 그 어느 것 하나도 근거가 충실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엄연히 고전에 나온 단어를 '근대 어휘'라 우기는 것은 물론 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신공격을 하거나 표피적 해석으로 우기는 행태만 확인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은 사실에 대해서는 수십년째 무시, 회피로 일관하면서 대중들을 향해선 마치 해당 사서에 대한 논쟁이 다 끝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기만 행위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강단사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무시, 회피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살펴본다.




단군조선 시절 있었던 5행성 결집 현상



지난 1994년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와 故 라대일 교수는 혹시 천문 관측 기록을 통해서 신화 속으로만 알려졌던 고조선 역사를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환단고기』와 『단기고사』등에 대한 천문 관측 기록에 대한 검증을 해 논문을 발표했고 이는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라는 책으로도 발간됐다.









박창범 교수의 말에 의하면 천체 운동을 계산하는 프로그램만 있다면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천문 현상들도 다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발상을 토대로 만일 천문 관측 기록의 실측 여부가 판가름 난다면 그 시대가 신화 혹은 가공의 역사가 아닌 실제 역사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단고기』엔 일식(日蝕) 10회, 5행성 결집 현상 1회, 강한 조수 현상 1회, 환일(幻日) 현상 2회 등의 천문 관측 기록이 있는데 이 중 박창범, 라대일 교수가 주목했던 것은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등 5행성이 한 자리에 모이는 5행성 결집 현상이었다.



『환단고기』《단군세기》의 13대 흘달 단군 50년(기원전 1733년)에는


"재위 50년 무진(戊辰)년에 오성(五星)이 누성(婁星)에 모였다.(戊辰五十年五星聚婁)"


는 5행성 결집 기록이 있다. 위 기록에 나오는 '누성'이란 동양 28수(宿) 중 하나인데 서양식 별자리로 치환하면 양자리에 해당한다.



박창범 교수는 이때를 기준으로 전후 약 550년 사이에 5행성 결집이 일어난 시점을 샅샅이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기록 상 연도보다 1년 앞선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5행성이 약 10° 이내로 모여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보다 더 가깝게 모인 것은 그보다 180년 전인 기원전 1953년 2월 25일 새벽에 단 한 번 뿐으로 그 때는 5행성이 2.3° 이내로 모여 있었다고 한다. 연도의 오차에 대해서 박창범 교수는


“기록 연수보다 1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의 시간 계산법과 약 30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간 계산법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해도 좋은 수치이다”


라고 말했다.



연도 문제에 대해『환단고기』를 역주한 안경전 씨는 단군 원년을 무진년 즉, 기원전 2333년으로 계산한 것은 1월 세수(歲首)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본래 동양의 역법인 10월 세수로 하면 기원전 2334년이 되니 연도의 오차가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동양에서는 본래 10월이 세수였고 지금처럼 1월이 세수가 된 것은 한 무제 때 사마천이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면서 바뀐 것이다.






한편 기록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후대의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록해 넣었을 경우 그것이 불과 1년 차로 맞아 떨어질 확률은 0.007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 확률은 세계 지도에서 임의로 한 장소를 지목했을 때 그 장소가 한국일 확률로 그만큼 희박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5행성 결집 현상이란 당대의 누군가가 실측한 자료이고 아울러 《단군세기》의 기록 역시 당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결집 위치는 기록과 달랐다고 한다. 위 기록 상에는 누성 즉, 양자리 근처에서 5행성 결집 현상이 이뤄졌다고 했으나 실제 결집된 위치는 그보다 약 130° 떨어진 바다뱀자리였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 박창범 교수는 결집 위치는 후대인의 개입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실 기원전 18세기는 동양의 28수 별자리 체계가 잡히지도 않았을 때이므로 결집 위치는 후대 사가가 옮겨 적을 때 상상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박창범 교수는 실제 중요한 것은 결집 현상 그 자체이지 결집 위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창범 교수가 이같은 사실을 밝혀낸 것이 벌써 31년이나 지났지만 주류 강단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반박도 제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무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행성 결집 현상이 자의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이 책을 과연 위서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남해에서 발생한 강한 조수 현상



이후에 박창범 교수가 주목한 현상은 29대 마휴(摩休) 단군 때 있었던 강한 조수(潮水) 현상에 관한 기록인데 『환단고기』《단군세기》엔


“재위 9년(기원전 935년) 병술(丙戌)년에 남해(南海)의 조수가 석 자나 후퇴했다(丙戌九年南海潮水退三尺)”


고 적혀 있다.



박창범 교수는 앞에서 5행성 결집 현상을 조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서에 기록된 기원전 935년을 중심으로 전후 200여 년 동안에 나타난 조석력의 작용을 조사해본 결과 기록에 나타난 해보다 4년 후인 기원전 931년 11월 22일에 가장 큰 조석력이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기록과 연도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단군조선의 원년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고



만일 후대인이 작위적으로 삽입했을 경우 들어맞을 확률은 0.04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역시 조작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제 고대 사서에서는 종종 연도가 잘못 기록돼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백제본기》의 경우 문주왕과 삼근왕 대에 서기 478년의 기록이 중복 기재돼 존재하지 않는 1년이 있으며 고구려 안장왕과 안원왕, 신라 진평왕과 헌덕왕 등은 사망 연도가 한국과 중국의 기록이 다르다. 그 외에도 같은 사건임에도 사서마다 연도의 차이가 발생한 경우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남해 퇴조 현상 기록에서 연도가 4년 차이가 난 것은 위 『삼국사기』사례와 마찬가지로 단순 오기(誤記) 혹은 2종류 이상의 기록을 참조하면서 1가지를 선택했다 벌어진 일일 뿐 크게 의미를 부여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단군세기》의 기록이 후대의 누군가가 조작해서 적은 것이 아니라 실제 문헌에 존재하는 내용을 실은 것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1909년 등사본 환단고기.(사진=한문화타임즈)


1909년 등사본 환단고기.(사진=한문화타임즈)



1909년 등사본 환단고기의 존재



그간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해당 책이 1979년에 이 책을 공개한 한암당 이유립이 창작한 위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참이 되려면 1979년 이전에는 '『환단고기』'란 이름의 책 자체가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지어낸 위서다"는 명제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1979년 이유립이 공개하기 이전에 '『환단고기』'란 이름의 책이 있었고 운초 계연수가 사망했다는 1920년 이전에 존재했음이 확인이 된다면 그간 위서론자들이 앞세운 대전제가 뿌리부터 뒤흔들리게 된다.



지난 2019년 12월 6일 세계환단학회에서 환단고기를 감수한 해학 이기 선생의 '등사본 환단고기' 원문이 운룡도서관 이명우 이사장에 의해 공개됐다. 이 이사장은 이 등사본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편찬하기 위한 1909년의 초고(草稿) 자료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환단고기』 등사본은 《삼성열기》,《단군세기 서》,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북부여기 하》로 구성된 47쪽의 등사본으로 이뤄져 있으며 《태백일사》와 《삼성기 하》는 빠져 있고 그 내용은 1979년에 출간된 『환단고기』 광오이해사본, 배달의숙본과 내용면에서 90% 이상 같으나 다른 부분이 조금 있다고 한다.



환단고기를 감수한 인물로 알려진 해학 이기.(사진=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환단고기를 감수한 인물로 알려진 해학 이기.(사진=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내용 중에 '李沂註曰' 혹은 '海鶴李沂注曰'이란 주해가 문장 중 곳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환단고기』 범례엔 계연수 본인이 진사 백관묵 씨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에게서 얻은 옛 사서를 모두 필사해 하나로 묶어 그 이름을 『환단고기』라 했고 스승인 해학 이기 선생으로부터 감수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9년에 사망했으므로 계연수가 이기로부터 감수를 받은 시점은 1909년 이전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등사본은 계연수가 아직 『환단고기』필사를 다 완료하기 전에 일부분을 스승인 이기에게 감수를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등사본 환단고기에 대해선 심층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나 중요한 것은 이것의 존재는 그간 위서론자들이 주장한 바는 입론부터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등사본은 이유립이 소장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1909년에 이유립은 3살밖에 안 된 어린이였다. 만일 3살짜리 아이가 저걸 지어냈다면 역설적으로 이유립은 난세의 신동(神童)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서론자들은 이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명우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어떤 인물이 이미 복사해서 가져 갔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이 책을 논문으로 낼 때까지 절대 공개하지도 말고 복사도 해 주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는 『환단고기』 위서론으로  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등사본의 존재를 숨겼다.



이같은 이명우 이사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태를 저질렀다. 이는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다.




결론



위에서 든 예시 외에도 임채우 씨는 『환단고기』에 나타난 곰과 호랑이에 관련된 내용을 보고


“『환단고기』각 권에서 그 내용을 서로 다른 의미로 기록한 점이 『환단고기』가 한 사람의 저서가 아님을 반증한다”


고 주장했다. 즉, 이유립이 창작한 것이라면 그 내용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위서가 아니란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볼 때 『환단고기』는 마냥 위서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서론자들은 모두 처음부터 "『환단고기』는 위서다"는 대전제를 세우고 하위 논리를 구사하는 순환논증식의 논법을 구사했고 언론의 힘을 동원해 대중을 기만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인신공격과 불리한 사실은 무시, 회피하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한 가지 오해를 풀자면 본지는 『환단고기』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거나 진서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기획 기사의 목적은 『환단고기』 위서론이 얼마나 충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인지 검증하는 것에 있으며 "『환단고기』는 진서다" 혹은 "『환단고기』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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