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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바둑] 2025년 6월호에 실린 인터뷰 <피플&바둑 | 한국 최초 韓·美·日 변리사 자격증 딴 윤진훈> 전문입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인 윤진훈(49) 씨는 프로기사를 꿈꾸던 '미생(未生)'이지만, 바둑을 포기한 뒤 한국과 일본, 미국 변리사 자격증을 모두 획득하는 기록을 썼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족적입니다. [월간바둑]은 매달 25일에 발행합니다. -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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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윤진훈(49) 씨가 국내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 미국 변리사 자격증을 모두 획득했다.
고시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운 자격시험인 변리사 시험을 3개국에서 모두 합격한 윤진훈 변리사는, 국제 변리사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바둑’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우연히 접한 신문 기사가 변리사 되게 한 동인
윤진훈 변리사의 이력은 화려하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외할머니 권유로 경북 울진의 기원에서 처음 형과 함께 바둑을 시작한 윤 변리사는 어려서부터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재능을 드러냈다. 어느 순간 형을 넘어서는 등 소질이 엿보이자 동네 바둑교실을 거쳐 근처에 살던 장수영 九단에게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웠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이 될 만큼 바둑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윤 변리사와 연구생 생활을 같이 했던 선후배는 이창호 최명훈 김영환 김영삼 김성룡 등이었다. 당시 가장 친하게 지낸 동료는 버스를 같이 타고 관철동 한국기원을 함께 다녔던 김만수 프로였다고.
1986년 열린 7회 해태배 어린이바둑대회에서 현 프로기사인 윤영민을 꺾고 우승할 정도로 기재를 보였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학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변리사의 길을 걷게 된 인연도 조금 특이하다.
3군 사령부에서 투 스타 당번병으로 군 생활을 하던 시절, 최연소 변리사에 합격한 고등학교 친구의 사연을 우연히 신문에서 접했다.
‘친구는 최연소 합격하는데 나는 바닥이나 닦고 뭐 하는 거지?’
그때의 충격이 변리사에 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결국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했던 컴퓨터공학도를 변리사의 길로 전향하게 한 도화선이 됐다.
2002년 졸업 후 그해 7월 변리사 2차 시험을 본 후부터 어렸을 때 배운 ‘바둑’은 사회생활의 엄청난 무기로 활용됐다.
![[531675]yjh05.jpg](https://photo.cyberoro.com/photo/202506/%5B531675%5Dyjh05.jpg)
![[531675]yjh06.jpg](https://photo.cyberoro.com/photo/202506/%5B531675%5Dyjh06.jpg)
‘바둑’으로 해결한 초단기 외국어 습득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뭔가 배워보자는 심정으로 한 달 뒤인 8월 영국 케임브리지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처음에는 영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케임브리지 고(GO) 클럽’에서 실력을 보여준 이후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갈고닦은 바둑 실력으로 곧바로 지도사범이 된 윤 변리사는, ‘고 클럽’ 회원들과 영국 각지를 돌면서 대회에 참가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터득했다.
“어학연수 때 가장 큰 문제점이 한국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는 거고, 그럼 망하는 거거든요. 저는 항상 현지인들과 같이 있었으니까 학원에 갈 필요도 없었고 저절로 말문이 트이고 영국문화에도 쉽게 적응이 되더라고요. 이게 다 바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변리사 합격 소식에 어학연수를 다섯 달 만에 이르게 마친 게 아쉬웠지만, 한국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바둑은 바늘과 실처럼 윤 변리사의 가장 큰 특기가 됐다.
2003년 김앤장 특허법률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윤 변리사는 2006년부터 특허청 심사관으로 공직생활에도 몸담았다. 5급 사무관 특채 제도를 통해 특허청에서 일하면서도 바둑은 윤 변리사의 든든한 친구역할을 했다. 1년에 한 번씩 중앙행정기관 바둑동호인대회가 한국기원에서 열리는데, 2009년도 특허청 주장으로 출전해 우승한 기억도 생생하다.
![[531675]yjh04.jpg](https://photo.cyberoro.com/photo/202506/%5B531675%5Dyjh04.jpg)
한국 변리사에 이어 일본 변리사 자격까지
일본 변리사 자격은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일본 유학의 기회를 잡았기에 가능했다.
“대학시절 바둑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서정훈 선배가 일본 유학 후 현지에서 생활했던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도쿄도(東京都) 구니타치(國立)에 위치한 명문 히토츠바시(一橋)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구생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부터다.
“일본 유학 한달 전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일어났어요. 뉴스를 보니 모든 게 다 떠내려가고 하는 참상을 보니 황당하더라고요. 그래서 문부성에 연락을 했죠. ‘유학을 몇 달 늦추면 안되겠냐’고 문의했더니, 문부성에서는 ‘당신 아니더라도 오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오지 않으면 차순위자에게 연락하겠다’라고 하더군요.”
가족과 함께 가는 유학이라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윤 변리사는 본인이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지로 향했다.
“가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게 잘 돌아가더라고요.”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유학을 시작했지만 바로 대학원 입학을 하진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본인 선택으로 1∼2년 동안은 ‘연구생’이라 불리는 신분으로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에는 좀 미안하지만 사실 그때 제 숨겨진 목표는 학업이 아니고 일본 변리사 시험 합격이었거든요.”
결국 2012년 일본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일본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데도 알음알음 도움을 준 것은 바둑 실력이었다.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바둑은 시험(공부 내용)하고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더라도 여러 면에서 활용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바둑으로 지적 능력이 무장돼 있으면 대학입학시험이라든지, 언어 습득에도 쓸 수 있고, 논리력이라든가 컴퓨터 알고리즘까지 제가 경험했던 모든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일본행을 결심했지만 일본어는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점점 실력을 늘렸다.
“일본어 학원은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어요. 일본에 가서도 처음 한 게 히토츠바시 대학교 바둑부에 가서 가장 강한 상대와 바둑을 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일인자를 인정하는 문화가 강하거든요. 바둑부 최강자였던 요시다 상과 예닐곱 번 둬서 계속 이겼더니 저절로 사범이 됐습니다. 일본 대학생들하고 바둑도 두고 마작도 하면서 언어를 익혔고 변리사 논문 쓰는 것도 일본친구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어 쓰는 것이 흉내만 내는 것이었는데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주곤 했어요.
일본 변리사 3차 시험에는 스피킹이 있어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외국인은 드물거든요, 저는 운 좋게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에서 요코야마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 함께 시험 준비를 했고 둘 모두 구술 테스트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531675]yjh03.jpg](https://photo.cyberoro.com/photo/202506/%5B531675%5Dyjh03.jpg)
국제 변리사 3관왕 오른 비결은 ‘바둑의 힘'
일본에서 변리사가 돼 특허로펌(세이와 특허사무소)에서 일하던 중 친구 요코야마의 권유로 독일 뮌헨에 있는 특허사무소(WinterBrandl)에서 잠깐 일하게 됐다. 물론 독일에서도 현지 어학을 습득하기 위해 바둑을 활용했다. 뮌헨 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현지 독일인과의 교유로 독어를 금방 배웠고 독일 회사에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독일 체류는 길지 않았다.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셋째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는 저희 가족이 독일에서 다시 합치기로 했는데 갓난아이가 있으니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아 가족의 희망대로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독일 사무소 오너가 굉장히 안타까워했어요. 가족이 다 이민 오는 줄 알았다면서요. 나중에는 그러더라고요. 지금 네 결정은 어쩔 수 없지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요.”
2016년 한국으로 돌아온 윤 변리사는 특허법인 태평양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미국에 체류하며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 끝에 지난 2월, 6개월 체류 만에 초단기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변호사 시험 준비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변호사 시험을 패스했지만 아직 등록되지는 않았습니다. 변호사 윤리 시험을 최종 패스해야만 등록을 시켜주는데, 굉장히 쉬운 시험이라 걱정은 하지 않고요, 이제 곧 응시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미국은 변리사와 변호사 시험이 분리돼 있지 않아서요. 변호사 시험을 합격한 후 한국이나 일본에서 변리사가 하는 특허 관련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인터뷰 이후 등록완료 되었다)
일국의 변호사 시험을 어떻게 6개월 만에 딸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실 저는 변리사 자격증이 있어 외국법 전문가로 인정받아 특별 케이스로 시험 자격이 주어진 거예요, 일반인들은 미국 로스쿨 학위인 JD(Juris Doctor)를 받으려면 3년 과정의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도전을 계속하다 보니 새로운 기술의 수혜자가 되기도 하네요.”
‘일본과 미국 변리사 자격까지 획득한 것이 보다 큰 야망이 있어서인지?’라는 질문에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AI 시대를 맞아 저희 업계도 굉장한 변혁을 겪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새로 나온 기술이 특허를 받으려면 (기존과 비교해) 기술적인 진보가 있느냐를 밝히는 게 변리사의 업무였는데, 지금은 AI한테 맡겨도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는 시대가 됐거든요. 약간은 하이브리드적인 시대라고나 할까요. 변리사가 AI를 활용해 얼마나 퍼포먼스를 많이 낼 수 있느냐가, 이전 AI를 활용하지 않았던 시대와 비교해 다르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거의 AI로 대체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제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머지않아서요.
어떤 AI를 활용해 변리사의 업무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 일단은 그런 쪽에 가장 관심이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 목표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업계 최초로 한·미·일 변리사 자격증 획득이라는 신기원을 이룬 윤진훈 변리사의 도전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글/[월간바둑] 차영구 편집장·사진/이주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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