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저스틴 토머스(아래 오른쪽)가 29일 열린 싱글매치 경기를 앞두고 1번 홀에서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이 29일(한국시간) 끝난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 미국을 15-13으로 꺾었다. 올해 대회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베스페이지 골프장 블랙 코스에서 열렸다. 미국은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데다 거친 응원으로 악명 높은 뉴욕에서 대회가 열려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럽은 대회 2일 차(28일) 11.5-4.5로 미국을 압도했다. 미국은 최종일(29일) 싱글 매치에서 맹렬하게 추격했지만, 그 전까지의 점수 차가 너무 컸다. 유럽은 ‘메다이나의 기적’으로 불리는 2012년 대회에 이어 13년 만에 원정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유럽은 또 2010년 이후 8차례 대회에서 6번 우승하는 등 강세를 이어갔다.
사회는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US오픈 테니스, 수퍼볼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마다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뉴스위크가 “트럼프의 국내 출장은 재난 현장이나 정치 집회보다 스포츠 이벤트 쪽이 더 많다”고 했을 정도다.
이번 라이더컵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골프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라이더컵에 미국 대통령이 응원하러 온 건 처음이다. 미국 팀 캡틴 키건 브래들리는 “대통령이 오셨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반겼다. 트럼프는 1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미국 선수들을 격려했고, 관중은 미국 국가를 합창했다.
대통령의 현장 응원 이후 관중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미국 팀도 관중을 자극해 상대를 주눅 들게 하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팀 간판 로리 매킬로이가 주 표적이었다. 1번 홀 장내 아나운서는 관중에게 성적인 욕설을 구호로 외치도록 부추겼다. 관중은 경기 중에도 매킬로이를 향해 야유와 외모 비하, 심지어 부인에 관한 성적 발언까지 외쳤다. 샷을 하려는 순간 소리를 내는 비매너 행위도 빈발했다. 도를 넘자 미국 팀 저스틴 토마스가 매킬로이의 퍼트 때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조용히 시켰을 정도다.
이번 라이더컵의 미국 팀은 친트럼프 성향이 강했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 공신이다.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는 “트럼프와 가끔 통화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브래들리는 트럼프 지지자로,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데도 애국심 때문에 캡틴에 뽑혔다.
미국 팀 ‘원투펀치’ 디섐보(1승1무3패)와 셰플러(1승4패)는 부진했다. 브래들리는 “선수 조합과 경기장 세팅에서 실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미국 팀은 라이더컵이 명예의 대회인데도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이번에 처음으로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되었다. 유럽은 그 전처럼 보상 없이 경기했다.
트럼프가 스포츠 현장에 자주 나오는 건 ‘미디어 노출’ 때문이다. 생중계·뉴스·소셜미디어를 통해 얼굴과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면 정치 무관심층에게도 도달할 수 있다. AP는 “트럼프는 스포츠 이벤트를 그가 고립된 정치 공간 밖에서도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로 본다”고 풀이했다. 스포츠는 보수 지지자 계층과도 관계가 깊다. 옵저버는 “이런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지지층과 동일한 문화 경험을 공유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전했다.